조선시대 왕은 하루 평균 3~4끼 식사를 했으며, 간식을 포함하면 5~6끼로 늘어났습니다.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으로, 출출함을 달래는 가벼운 식사에서 유래했습니다.
조선 왕실의 하루 식사 횟수: 겉보기와 실제
조선시대 왕실의 식사 기록을 보면 하루에 여섯 끼에 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새벽 6시경의 초조반(初早飯), 오전 10시경의 아침 수라, 정오 무렵의 점심(點心), 오후 3시경의 참, 저녁 6시경의 저녁 수라, 그리고 잠들기 전 밤 9시의 야참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 점심, 참, 야참은 제대로 된 식사라기보다는 출출함을 달래기 위한 간식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의 왕들은 스스로 하루 세 끼, 혹은 절약할 때는 두 끼의 식사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선조는 흉년이 들자 자신이 평소 삼시 세끼를 먹지 않는다며 쌀의 절반을 덜어 어려운 백성에게 나누도록 명했습니다. 정조 역시 하루 두 끼만 먹는다고 언급한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식사 횟수와 실제 왕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식사 횟수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의 유래와 의미: '마음에 점을 찍다'
점심(點心)이라는 단어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점을 찍는다'는 뜻의 '점(點)'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는 아침과 저녁 식사 사이에 허기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먹는 가벼운 음식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황제와 제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두 끼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때 아침 식사와 저녁 식사 사이에 시장기를 느끼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간단하게 먹는 요깃거리가 바로 점심의 시작입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점심을 '소식(小食)'으로 정의하며,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허기진 마음에 점을 찍듯이 적은 양의 음식을 먹어 배고픔을 잊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점심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는 '마음의 위로'와 같은 의미를 지녔습니다.
옛사람들의 식사 횟수와 현대의 차이
과거 동양 사회, 특히 평민 계층에서는 경제적 여건과 신분에 따라 하루 두 끼 식사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농부들 역시 농사일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여름철에는 아침, 점심(새참), 저녁으로 세 끼를 먹기도 했으나 겨울철 농한기에는 아침과 저녁 두 끼만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대처럼 하루 세 끼 식사가 보편화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부터입니다. 흥미롭게도, 식사 횟수에 대한 규정은 고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백호통의'에 따르면 황제는 네 번, 제후는 세 번, 공경대부(고위 관료)는 두 번 식사하는 것으로 정해졌는데, 이는 신분에 따른 위계질서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은 당시 제후에게 적용되던 식사 예절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규정일 뿐, 실제 평민들은 경제적 이유로 하루 두세 끼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