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사단의 독특한 군 생활, 특히 100km 행군과 '알통 사단'으로 불렸던 시절의 경험을 2026년 기준으로 재조명합니다. 당시 교관이었던 6.25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와 함께, 일반적이지 않았던 특별한 군 복무 경험을 상세히 풀어냅니다.
26사단의 특별함: '알통 사단'과 100km 행군이란?
제가 군 복무를 시작했던 1970년대 초반, 26사단은 '알통 사단'으로 불리며 강도 높은 훈련으로 유명했습니다. 이는 당시 교관진의 상당수가 6.25 전쟁 참전 용사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단장님의 특별한 지시로 주 1회 10km 완전군장 구보와 연 2회 이상 24시간 내 100km 행군이 필수 훈련으로 포함되었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였기에 병사들은 동기 부여가 되어 꾸준히 근육 운동을 했고, 한 달 만에 눈에 띄는 근육 발달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훈련 강도는 현재의 군 생활과는 사뭇 다른,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100km 행군, 그 극한의 도전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사단장의 핵심 과제였던 100km 행군은 단순한 체력 단련을 넘어선 극한의 도전이었습니다. 사단장 부임 첫해에는 연대장이나 대대장도 일부 구간을 병사들과 함께 걸었으며, 신규 군의관조차도 예외 없이 훈련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100km 행군로 확보를 위해 사단 관할 지역 외 여러 사단 지역과 전방 지역까지 포함해야 했으며, 3~4개의 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 험난한 코스였습니다. 행군 전날에는 병사들에게 특식이 제공되었고, 장교와 선임하사들은 영외 식당에서 돼지고기로 영양을 보충했습니다. 특히 월남 파병 경험이 있는 선임하사는 100km 행군이 월남 실전투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중화기 중대는 81mm 박격포와 같은 무거운 장비를 차량 없이 완전군장 상태로 도보 운반해야 했기에, '화기는 낙오를 모른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이는 당시 군대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중화기 운반, 낙오와 체력의 한계는 없었나?
중화기 중대의 경우, 60mm 박격포나 81mm 박격포와 같은 무거운 장비를 분할하여 세 명씩 나누어 메고 행군해야 했습니다. 이는 완전군장 외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했으며, 병사들의 체력적 한계를 시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학군 출신 소대장 두 명이 10km 완전군장 구보에서 낙오하는 사건은 당시 훈련의 강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운동 신경이 뛰어난 장교조차 낙오할 정도였으니, 일반 병사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훈련이었을 것입니다. 낙오 시 가혹한 체벌이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이러한 훈련은 단순히 군기를 잡기 위한 것을 넘어 생존과 직결되는 훈련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대 후에도 잊히지 않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군 생활 에피소드, 지금과 다른 점은?
제가 겪었던 군 생활은 현재와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6.25 전쟁을 직접 경험한 교관들이 많아 훈련 강도가 매우 높았고, 병영 문화 역시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100km 행군과 같은 극한 훈련은 현재 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경험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경험들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비록 제가 복무했던 26사단은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의 특별한 사단장님과 함께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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